Skip to main content

Foreign Company(외국계 회사)

· 34 min read
Alex Han
Software Engineer

2015년에 입사해 3년 동안 다닌 외국계 회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면접

여러 준비를 하며 it 분야로의 직종 변경을 생각하며 지내던 중 갑자기 업데이트 해 놓은 이력서를 보고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외국계 회사에 탄탄한 재무 상태면서 현재 집에서도 가까운 위치의 회사였습니다. 당시 선배들한테 들었던 다닐만한 회사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인당 10억을 넘기는 매출액을 가진 회사를 가야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었는데, 이것을 충족하는 회사였습니다.

직종 변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었지만 주변(가족, 친구 등)의 깊은 걱정과 취업 압박이 있었고, 외국계 회사라면 이전에 정했던 목표 중 하나로 경험해 보고 싶은 회사였기 때문에 지원해 보기로 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영어 자기소개를 준비하고 그 간 해 온 일들을 정리해 가며 부족한 부분들을 공부해 나갔고, 마지막으로 업데이트 된 이력서까지 숙지하여 준비를 마쳤습니다.

드디어 면접 당일 ☀️,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회사의 첫 인상은 조립식 판넬 같은 가 건물로 지어져 있었고, 넓은 주차 공간에 주차를 한 뒤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하자 덩치 있는 두 분이 나타나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날 데려갔습니다. 두 분은 입사 후 알게 되지만 소속되게 될 팀의 팀장과 선임대리였습니다.

공장 자동화에 대한 경험은 있는지? PLC 를 얼마나 다뤄 봤는지? 등등 실무경험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다행히 Simens 계열의 공장자동화 소프트웨어는 모두 내가 해 온 일이고 잘 아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신있게 실무를 할 수 있음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회사 경력이 너무 짧아 바로 업무를 잘 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짧은 회사 생활 때문에 뽑기를 망설이는 모습도 보여서 말하지 말 걸 그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직 이유를 낮은 연봉 때문이라는 이유를 분명히 밝혔고 군 시절 경험과 여러 역경을 이겨낸 일들을 제시하며 원래 잘 버티고 인내심 있는 사람임을 어필했습니다.

면접이 마무리될 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 물었고 괜히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당장이라도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금요일에 면접을 보고 월요일이 입사일이 됐습니다.

입사일

입사 후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면접 때의 존대하는 분위기와 달리 팀장과 선임들이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라고 말하며 바로 말을 편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팀장은 빠르게 업무 소개를 했고 다음주부터 현장에서 실무 투입 될 예정이니 잘 숙지하고 있으라며 책 두께의 프린트를 여러 개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멀리 선임들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너무 바로 보내는 거 아니냐? 그러다 나간다, 실무에 투입되고 나서 힘들게 일해 봐야 회사에 남아 있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일종의 테스트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습니다. 면접 때 말한 것처럼 당시의 나는 열정이 가득했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 능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고 포기하지 않겠다 생각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됐고 같은 팀원들끼리 식사를 같이 했는데, 식사를 같이 하러 간 팀원은 팀장과 면접 때 봤던 선임대리 둘 뿐이었습니다. 같은 회사의 다른 팀들도 물론 같은 시간대에 식사하기 때문에 식사하는 장면들을 봤었는데 선임이 먼저 자리에 앉으면 후임이 자리에 앉고 선임이 자리에 못 앉을 경우 후임이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아 먹는 등 군대생활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수평적인 관계일 거라 예상했던 외국계 회사였는데 수직적인 관계라는 것에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첫 일주일

당시 회사의 업무 방식은 프로젝트가 많지 않아서 그랬는지 선임대리급이 한 명 프로젝트 고문으로 가 있고 거기에 신입 또는 후임이 배정되서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해 마무리 짓는 방식이었습니다.

SK인천석유화학 공장에서 나오는 VOC(Volatile Organic Compounds)를 처리하는 RTO(Regenerative Thermal Oxidizer)장비를 설치하고 기대한 만큼 VOC를 잘 처리하며 좋은 효율로 운전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츨발하기 전 1주일 동안 다른 선임들과도 같이 식사를 하며 회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됐는데, 선임과 후임이 같이 배정되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그 곳에 내가 배정된 이유는 이전 후임이 퇴사했기 때문이라는 것과 그 선임분이 악명이 높다는 것, 꽤 여러차례 후임을 나가게 만든 분(이후 악덕선임이라고 지칭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대 생활 때도 이상한 사람 많았고 악덕한 사람 있었지만 잘 지냈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같은 일에 있어서 느끼는 바도 서로 다 다를 수 있고 사람간의 관계도 같은 사람이어도 사람마다 다른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생각하려 노력했고 열심히 일 할 마음으로 업무를 숙지해 나갔습니다.

금요일, 악덕선임이 등장했고 갑자기 업무용 트럭에 실어야 할 부품과 공구 리스트를 말하더니 실어 놓으라고 명령했고 월요일부터 인천으로 가야 하니 새벽 6시까지 회사로 출근하면 회사 차로 같이 이동한다고 말을 남기고 퇴근해 버렸습니다.

처음 듣는 부품, 공구들을 말로 대충 말하고 가서 찾는 일이 힘든 상태였고 다른 팀 선임들한테 질문해 가며 부품과 공구를 차에 실은 뒤 퇴근했습니다.

첫 실무

다음 날 새벽 6시 출근하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발하기 전 물품들을 한번 더 점검하고 기다리다 보니 30분이 지나 악덕선임이 왔고 어제 말한 걸 잘 챙겼냐고 못 챙겼기만 해보라며 화를 내고 인천으로 출발했습니다.

인천까지 가는 길은 아침이라 막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시간이 걸렸고 선임은 온풍기를 틀고 옆에서 잠들었는데 본인이 춥다며 창문을 못 열게 해 졸음을 겨우 참아가며 가까스로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SK인천석유화학의 출입 과정을 바로 실행하며 진행했고 짐 수레에 짐을 끌어가며 공장 내 사무실까지 옴겼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 짐을 정 위치에 둔 뒤 악덕선임은 잠을 못 잤다며 누구 오면 부르라더니 갑자기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30분 정도 지나자 아침 체조를 해야 한다며 나오라고 사람이 왔고 선임과 함께 나가 보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고, 선임과 나는 사람들과 함께 아침 운동을 했습니다. 군대 이후로 간만에 하는 단체 아침 운동이라 신기했습니다. 아침 운동이 끝나고 본격 공장에서의 업무가 시작됐습니다.

악덕선임은 우리 장비가 설치된 곳과 담당자분을 소개해 주고는 거의 다 했으니 시공을 잘 마무리 해 보라며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전기선을 끌어다 판넬연결하고 PLC 접점에 배선하는 배선공 아저씨들이 하는 일을 해야 했는데 PLC 프로그래밍만 하다가 처음 보는 설계 도면을 보며 배선공의 일을 배우고, 배선공 아저씨들에게 도면을 보며 배선을 똑바로 했는지 질문해 가며, 관리 감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 계장품들의 메뉴얼 문서와 설계 도면들을 보며 업무를 완전히 파악했고, 아저씨들에게 배선 방법을 가이드하고 일하는 아저씨들이 힘들다고 투정 부리면 완급조절을 하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매일 일일 업무 일지, 시공 계획, 설계 자료 등 많은 서류들을 작성해서 대기업 담당자에게 확인받는 절차를 거치고 회의실에 가서 시공 현황에 대해 회의도 하며 지내게 됐습니다.

어느 날은 악덕선임이 서류를 대충 제출해서 담당자의 심기를 건드려 담당자가 이 공장에서 나가라며 하이바 던져 가며 성질내며 실제 공사가 연기되는 날도 생겼고, 안전팀, 감사팀 등이 감시하다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 날의 프로젝트 일정연기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배선공, 기계공 등 외주 아저씨들을 인솔하며 업무 지시를 하는데 술을 많이 먹어 일을 못하는 등의 문제로 인력이 줄어들기도 하며 업무 지시를 잘못 이행하거나 가이드를 안 듣고 하고 싶은대로 이행하며 다시 일을 해야 하는 등의 일들이 반복됐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신입이었기 때문에 더욱 무시 당하고 잘 알지도 못하고 악덕선임은 화만 내고 잠만 자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이전 후임들이 왜 못 버티고 나갔는지를 체감했고, 결국은 선임에게 기대감을 1도 갖지 말고 오직 내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겠구나라고 마음 먹으니 차라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시공

장비가 공장에 설치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절차인력필요 했습니다. 하지만 적은 인력으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회사였어서 실무진 중 기계팀 1명, 전기팀 1명 만을 배치하고 일을 마무리 하게 했습니다. (물론 선임 1명과 같이 배치되지만 그 선임은 회의만 가끔 나가고 실무, 서류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아 회의 때 발언없이 내용만 듣고와 전달하는 업무 정도였습니다.)

우선 공장 관리 담당자들과 모여 장비에 대한 소개와 간단한 시공 계획을 말하고 실제 설치되어야 할 위치에 대해 논의하고 장비 설치를 위한 시공, 운반 계획을 해야 합니다. 또한 논의된 설치 위치와 공장 내 프로세스를 눈으로 파악하고 배관의 사이즈, 환경 상황들의 스펙들을 파악해 장비 설치를 위한 환경을 검토했습니다.

검토가 끝나면 실제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들어올 중장비들의 위치와 경로를 파악하고 시공의 모든 시뮬레이션들이 충족되는 위치를 정합니다. 장비를 설치하기로 정해진 위치에 대해 한번 더 공장 관리 담당자들과 논의하고 시공 기획, 설계 자료와 스펙을 이야기한 뒤 실제 업무가 시작됩니다.

업무가 본격 시작되면 매일 설계된 스펙 자료와 시공계획, 인력들이 왜 필요한지부터 뭘 했는지 까지 많은 서류들을 확인하고 그것에 대해 공장 관리 담당자들논의를 거치는 일을 계속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비, 눈을 대비해 실제 설치될 위치지대콘크리트로 높이고 중장비들과 설치 인력들을 소집해 시공을 진행합니다. 설치 인력들을 관리하며 설계대로 설치했는지 만들어온 장비가 스펙에 맞는지 검수하고 중장비 이용 계획, 세세한 설치 방식을 구상합니다.

이렇게 문제없이 장비의 겉이 잘 설치되고 나면 기계팀은 철수하고 기계팀의 보조를 하고 있던 전기제어기술팀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배관이 연결되어 있는 고철덩어리일 뿐인 장비에 팬, 버너, 판넬, 각 종 센서 등의 전기 계장품들을 설치하고 이를 판넬 내에 PLC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물론 각각의 계장품들의 성능 테스트 자료부터 스펙, 메뉴얼 자료 그리고 검수들까지 선 진행되어야 하고 배선공 아저씨들을 소집해 이를 완성해 가야 합니다.

전기 설치까지 모두 완료되고 나면 프로그래밍된 PLC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에 입혀주고 이제 본격적으로 현장 동작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갑니다. 각 동작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시운전을 위해 팬을 가동시키고 실제 공장 배기 가스가 아닌 바깥 공기를 활용해 RTO를 가동하고 버너가 현재 배합된 공기로 스파크를 튀겨 불이 정상 연소되는지 연료와 공기의 배합을 테스트 합니다.

불꽃의 색, 연료량, 팬 동작 등을 체크하며 최적의 상태를 만들고 나면 불을 실제로 높여 850도까지 온도를 높이고 모든 센서들과 프로세스들이 설계된 대로 흘러가는지 얼마나 효율적인지 체크해 다시 최적의 상태를 만들게 됩니다.

가장 힘들고 고된 초기 시운전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공장 프로세스를 거쳐서 온 처리해야 할 공기로 다시 시운전을 진행합니다. 공장의 공기는 많은 VOC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VOC를 연료 삼아 화력이 올라가 공기와 연료의 배합을 잘해야 하고 잘못하면 온도가 1000도를 넘어서 기계 장비 스펙에서 버틸 수 없는 온도까지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되는 순간들입니다.

그렇게 공장 내 VOC센서들과 실제 RTO 동작에 대한 동작 계수 값들을 조금씩 변경하며 최적의 상태를 만들고 나면 시운전이 종료됩니다.

며칠 밤을 새가며 시운전이 끝나면 거의 하루정도 지나서 실제 운전이 시작되는데 1주일 간은 대기하며 즉각 대응해주며 안정기를 갖습니다. 그 전에 고생하고 제대로 일을 마무리 했다면 이 1주일은 나름대로 잠깐씩 출근했다가 근처 모텔에서 쉬면서 대기하는 기간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고생한 걸 알아서 이 때 좀 더 놀다오라고 하거나 기간을 더 주고 쉬게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별, 직역별, 상황별로 프로젝트는 약간씩은 다르게 진행되기는 대부분의 시공 프로세스는 위와 같이 진행됐습니다.

전기 배선 설계

많은 프로젝트들을 거치면서 판넬 도면은 업무 지시를 하는 입장에서 완전히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숙지했고 나중에는 거의 외울 정도로 내용이 숙지됐습니다.

도면 내에 계장품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부터 판넬을 구성하는 패턴들, 전기 설계 방식들이 익숙해지자 당시 회사에서 한 명만 EPLAN 프로그램을 이용할 줄 알아서 도면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그 선임이 도면 설계를 해보라며 가르쳐줬습니다. 친절한 가르침과 그 동안의 프로젝트 경험 덕에 생각보다 이해가 쉬웠습니다.

설계도에 나오는 수 많은 계장품들의 spec 문서를 확인하고 설계한 뒤 실제 판넬 제작 시 설계도와 실제 배선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접점 테스트해 가며 판넬 검수를 통해 내 설계대로 됐음을 확인했습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직접 실무로 설계하다 보니 익숙해 졌고 할 수 있는 일이 됐습니다.

이후로 모든 프로젝트의 도면 설계는 그 선임분과 내가 나누어서 설계 단계에 일을 맡게 됐습니다.

PLC 엔지니어

외국계 회사에서 고연봉을 받는 즐거움도 있지만 PLC 엔지니어로서 좀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본사에서 프로그래머들이 전달해 준 내용과 거의 변경없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PLC 로직 상에서 뭔가를 변경하진 않고 HMI에서 환경 셋팅을 변경하거나 PLC 로직을 아주 조금 변경하거나 하는 미니멀한 커스터마이징이 전부였습니다. 심지어는 Siemens 소프트웨어 설치부터 PLC 내에 저장되는 데이터가 어디있는지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까지 회사 내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여기서도 이전 회사에서 배웠던 SimensStep7, WinCC 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설계된 내용과 설계 내용을 환경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SK인천석유화학은 Allen Bradley 사의 RSLOGIX5000, FactoryView를 사용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또한 오스트리아 본사에서 기본 셋을 주기 때문에 파악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설계된 내용을 보며 장비 프로세스에 대해 좀 더 깊숙히 알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공장 장비들을 구동하고 원하는 프로세스로 수정하며 그 동작들을 보는 경험은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판매하는 장비는 몇 개 없었고 연구 개발 부서도 따로 없었기에 더 늘어날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장 특성상 석.박사들이 만들어 놓은 화학 프로세스는 정해져 있고 이에 맞춰서 만들어진 프로그램 개발이 크게 달라지기는 힘들었습니다. 고객사마다 약간의 환경차이에 의해 수정되고 버전업되는 소프트웨어 적용 정도의 일을 맡아 하게 됐고 시운전을 위해서는 내가 모든 프로젝트에 고문처럼 등장하게 되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지만 항상 비슷한 일을 하기에 실력은 더 늘수 없어 고민에 빠졌습니다.

P&ID 설계

P&ID(공정관계장도)는 기계적 설치상태와 전기적 제어 장치의 공정 시의 상세한 프로세스를 살피기 위한 흐름도로서 이 흐름도에 환경장비의 화학적 프로세스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걸 그리는 것은 팀장급이었지만 사실 이 또한 오스트리아 본사측에서 제공한 자료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고 약간씩 커스터마이징하며 사용 했습니다.

물론 화학 공학 석.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화학적 프로세스를 만들어 새로운 장비 프로세스 기획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미 숙지한 장비의 P&ID는 공장 상황에 맞게 계장품과 배관 등의 설계를 어느정도 화학적 프로세스에 맞게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할 수는 있었지만 이 역시 본질적인 능력을 키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직 결심

많은 일들을 배우고 겪다 보니 어느새 4년차가 됐습니다. 연봉은 친구들에 비해 자신있게 말할 만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씀씀이 또한 커졌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전문성은 이 회사에서만 통할 수 있고 언젠가 이 회사가 무너지면 나도 무너질 것을.

회사가 불안정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재정이 꽤나 탄탄한 회사였고 정년도 보장해주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빠르게 성장하고 스스로 일하거나 집에 혼자 있어도 날 성장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회사에서 내 성장을 규제하는 분야가 아닌 내가 성장하려 하면 얼마든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분야. 일을 하면서도 그 모든 게 내 스펙이 되는 분야, 이 회사에 취업하기 전 내가 가고 싶었던 분야 였습니다.

그렇게 내가 가고 싶던 분야를 지금이라도 가고 싶어졌습니다. 더 늦으면 도전도 못해 볼 거란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고 이 회사에서 내가 살아남으려면 위 사람들처럼 정치하고 후임이 한 일을 자기가 한 일처럼 공을 뺏으며 충성 경쟁하며 능력은 점점 없어져 가는 나를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스스로 떳떳하게 내 능력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고 반복적인 회사 일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뭔가를 만들고 도전해볼 수 있는 분야로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만류

퇴사를 결심하고 직종 전환하겠다는 생각을 밝히자 주변의 모두가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이번 반대는 사실 설득력까지 있었습니다. 현재를 유지한다면 고연봉이 유지될 거고 탄탄했던 회사인 만큼 정년이 보장될 수도 있는데다가 집에서도 거리가 10분 거리에 회사가 잘 안되도 비슷한 분야로 취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능력이 급격히 늘거나 성장할 수 없고 회사에 속하지 않으면 혼자 사업을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현재를 유지하지 않고 내가 선택한 분야로 도전한다면 이미 30살이 된 늦은 시작에 대한 중압감과 평생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 속에서 일해야 하며 연봉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성장하고자 한다면 회사와 상관없이 언제나 성장할 수 있고 이 분야 보다는 수평적인 분위기에 사업이나 디지털노마드가 될 수도 있는 분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전향하기로 했습니다.

어른들과 주변 친구들 모두 강력히 반대했고 현실적으로 얼마나 손해인지를 지속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을 꾸고 있었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동경, 수평적 분위기, 그리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했고 결국 직종 전환을 선택 했습니다.

퇴사 계획

퇴사 후 직종 전환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며 미리 python을 공부했고 IT회사들의 지원자격을 살피고 인사담당자분들께 메일을 보내 궁금한 사항들도 질문했습니다. 신입으로 지원해 본 많은 회사들도 있었지만 IT 관련 경험이 한 줄도 없는 나의 손을 잡아준 회사는 없었습니다.

지금 분야에서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듯 내가 이력서에 쓸 수 있고 면접에서 자신있게 말할 능력이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국비지원교육을 찾아보게 됐고 메이저 교육 기관들에 지원했지만 교육 기관에서조차 IT 무경험자들을 탈락시켰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부족해 보이는 교육 기관에 지원해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합격한 교육 기관의 일정에 맞춰 회사일을 인수인계하며 원하는 시기에 정든 회사와 이별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