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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ning Courses(국비지원교육과정)

· 8 min read
Alex Han
Software Engineer

30살이 되던 해 회사를 나와 국비지원 교육과정을 들으면서 겪었던 일들입니다.

지원

프로그래밍 관련 교육 과정은 아주 많았습니다. 돈을 내고 다니는 학원 과정도 있었고 국비지원과정, 아니면 석사 과정을 밟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업을 잃은 상황에 돈 드는 걸 하는 건 리스크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결국 국비지원과정을 듣기로 결정했습니다.

IT 관련 국비지원과정은 웹개발과정머신러닝교육과정, IOT 교육과정 이렇게 3가지가 트렌드였습니다. 당시 뉴스에서도 이슈가 많이 되고 있었고 가장 멋있어 보였던 직업인 데이터사이언티스트가 되려면 머신러닝교육과정을 듣고 싶었는데 메이저 교육 기관들은 경쟁률이 거의 취업 경쟁률 같이 높아서 그 경쟁에서 면접에 가면 나이도 있고 이전 직장 일과 다른 분야를 도전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지원은 했지만 떨어졌었습니다.

메이저 교육 기관에서 많이 떨어지고 나니 상반기, 하반기 마다 열리는 교육과정 지원 가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래서 어딜 가든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만 얻는거니 아직 밑바닥 실력의 나로서는 어딜 가도 이득이다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사람이 안 몰려 보이는 곳으로 지원 했습니다. 그렇게 지원한 과정은 머신러닝 기반의 웹 프로그래밍 개발자 양성과정이었습니다.

국비로 지원하기 위해 내일배움카드를 등록하고 취업준비에 대한 자문을 형식적으로 받았습니다. 그 후 교육 기관에 면접을 봤고 면접 후 교육생 결정이 확인되고 자문해주는 곳에 등록해 국비를 지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6개월 간 교육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취업 공부를 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간이 생겨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싫었는데 사회 나오니 공식적으로 공부를 하는 시기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OT

첫 날은 강사님의 이력에 대한 설명과 책 배분, 교육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으로 끝이 났습니다. 교육 기간 동안 웹 개발부터 머신러닝까지 모두 배울 수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Java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처음 섹션은 java 언어에 대한 이해 였습니다. java를 사용하기 위해 eclipse editor를 이용했고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하는 느낌에 좋았습니다.

java를 이용해 여러가지 미션들이 주어졌고 해당 미션들을 하나씩 수행해 갔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이전에 python를 공부하던 때 했던 것들을 java로 바꿔서 하는 느낌이었는데 java가 python 보다 코딩 시 많이 불편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언어 공부를 하며 미션들을 수행하다 보니 적응이 늦거나 이해가 되지 않아 뒤쳐지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육 일정대로 수업이 나가지 않게 되고 점점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공부했던 내용이 있어 쉽게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언어의 기본 기능들을 가르쳐주시면서 연기되는 일정 동안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정보처리기사 필기를 준비해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Html, Css, Javascript

언어의 기본 기능들을 공부하고 웹 개발을 위한 html, css에 대해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html 태그들의 종류와 css 사용 방법들에 대해 듣다 보니 암기과목처럼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았습니다.

언제 다 이해해서 언제 다 제대로 사용하나 걱정했지만 각각의 사용법과 내용은 생각하던 것보다 아주 간단했습니다. 단순히 외우는 것이 문제였는데 사실 외우면 좋지만 외우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검색해 사용하다 보면 사용할 수 있었고 이것이 코딩의 원리임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검색하기도 매우 간단했고 설명도 자세히 찾을 수 있었습니다.

javascript는 언어에 대한 교육을 따로 하기 보다는 html, css 상에서 동적 구성이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불러오고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내용만 간략히 배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jQuery를 사용해 간단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습니다.

1차 팀 프로젝트

java, html, css, javascript를 배우고 자유주제에 웹싸이트 개발 팀 프로젝트가 진행됐습니다. 팀 구성은 잘하는 사람을 한 명 씩 배정하고 못하는 사람을 팀에 한 명 씩 배정한 뒤 나머지는 랜덤으로 배정돼 정해졌습니다.

잘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었지만 생각과 달리 잘하는 사람들이 찢어져 같은 팀에서는 내가 교육해줘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팀장이 됐고 어떤 주제로 개발을 할지 같이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팀원들이 모두 관심이 많은 건강관리에 대한 웹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름도 느낌있게 퀄리티 있는 헬스케어라고 해서 퀄스케어라고 지었습니다.

우리팀에 나이가 있는 분들이 좀 있었기도 했고 당시 헬스케어 앱으로 많이 쓰던 나이키앱, 삼성헬스 등의 기능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앱은 목표로 하는 근육량과, 체지방률, 목표체중 그리고 D-Day를 설정해 하루 먹어야 할 적정한 칼로리와 운동량을 계산해 식단, 운동을 직접 등록해 목표가 지켜질 수 있게 돕는 헬스케어 앱이었습니다.

우선 네이버에서 음식별 칼로리와 영양소 데이터를 가져왔고 운동별 시간에 따른 칼로리 소모 데이터를 가져왔습니다. 목표 체중과 디데이를 설정한 뒤 매일 매일 오늘 먹을 식단과 운동을 등록하면 목표로 해야 하는 칼로리와 운동량을 보여주고 목표에 맞게 각각을 체우거나 비워내서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돕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건강관리 웹(퀄스케어)가 완성됐습니다.

물론 본인의 신체나이, 체지방률, 키, 몸무게 등을 직접 입력해야 하고 근육량에 의해 체중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고려를 하지 못하는 등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팀장으로서 팀 간의 의견 조율을 해내고 기획에 반영해 가며 개발 과정과 일정을 산출하며 업무를 조율하면서 웹앱을 완성할 수 있었고, 매우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데이터 시각화

팀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되돌아 보니 팀 내에서 개발에 제대로 동참하지 못한 인원들이 많았습니다. 그 인원들은 그 동안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고 선생님도 복습을 도왔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머신러닝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R을 활용해 라이브러리를 블러와 학원에서 준비한 csv 데이터를 이용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python으로 R로 진행했던 시각화 내용을 똑같이 다시 재현했습니다.

그렇게 시각화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은 못 따라온 학생들이 너무 많고 어차피 제대로 가르치려면 과정 내 시간이 부족하다며 남은 과정들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렇게 머신러닝 교육은 마무리 됐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따라가는 내내 수업이 지연될 때마다 독학해 오던 버릇이 있어서 남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웹 서비스에 머신러닝 서비스를 도입해 볼 수 있도록 틈틈히 독학해 나갔습니다.

Spring

간단하게 jsp를 활용해 웹 개발을 해왔는데 웹 프레임워크인 spring을 활용하는 마지막 과정이 남았습니다. spring을 활용해 게시판을 만들어 보는 수업이었고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스크립트를 복습해 가며 eclips부터 spring sts 를 적용하고 서블릿, XML에 등록해서 게시판을 겨우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python으로 독학을 따로 하던 중이었어서 java를 배우던 기억은 좋지 않았습니다. 같은 개발을 하더라도 코딩을 훨씬 많이 해줘야 했고 셋팅까지 참 불편한 언어였습니다.

2차 팀 프로젝트

2차로 시작된 팀 프로젝트는 교육 수강을 포기하고 나간 인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인원이 얼마 남지 않아 2팀으로 나누어 개발을 했는데 갑자기 젋은 인원으로 팀이 구성됐습니다. 팀원들은 모두 동생이었는데 모두 롤이라는 게임에 빠져 있었고 결국 롤 관련 서비스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당시 단순하게 전적을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는 많이 있었지만 롤을 매일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추가 기능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 전적 검색
  • 대회 기능
  • 승패 예측 기능(+ 통계 기능)
  • 커뮤니티 기능
  • 챗봇 기능

기본적으로 로그인과 회원가입을 구성했고 어느 싸이트에나 있는 전적 조회 기능을 구현해야 했습니다. riot game 에서 제공하는 검색해 보니 developer 싸이트의 데이터 api가 있었기에 전적 데이터, 챔피언, 아이템 등 많은 데이터들을 수집해 올 수 있었습니다. 수집된 데이터들을 특성에 따라 분류하여 저장했습니다. 그런 뒤 전적 조회 시마다 최신 업데이트를 위한 로직 등을 설계하고 프론트엔드를 개발해 구현했습니다.

대회 기능은 로그인된 사용자만 가능한 프로세스였는데 대회를 만들고 위치와 상금, 팀인원을 정했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상금에 따라 아임포트 모듈을 이용해 결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결제가 완료되면 약속된 시간과 위치에 모여 피씨방 대회등을 할 수 있게 구글맵의 길찾기가 지원됐습니다. 그렇게 대회 참가 팀인원이 다 모이면 대회의 경과를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있어 참가자들이 경과를 알 수 있게 구현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이겼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되지 않아 수동으로 설정해서 경과를 표시해야 했고 결제된 금액도 누구한테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도 수동으로 보내야 하는 등 많은 한계가 존재하는 기능이었습니다. 아쉬운 기능이긴 했지만 그래도 있으면 좋겠다는 기능이 화면에 표현은 됐어서 다들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승패 예측 기능은 화면에서 챔피언과 사용 장비를 입력 받으면 그걸 이용해 최신 전적 데이터를 불러왔고 불러온 데이터를 전처리해 tensorflow 를 활용한 승패예측을 해주는 기능입니다. 더해서 승패 예측에서 사용된 모델의 정확도와 오차에 대해 트레이닝 당시의 데이터를 그래프로 보여주고 부가적으로 아이템과 챔피언, 능력치들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통계 데이터, 챔피언과 아이템 간의 관계, 챔피언과 데미지 입히는 것과의 관계 등 많은 부가 통계 데이터들을 제공했습니다.

다른 많은 작업들이 있어 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모델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해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머신러닝을 적용했다는 생각해 뿌듯했습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flask, tensorflow, pandas 등 많은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해당 부분이 적용된 것을 보고 팀 프로젝트에 대한 좋은 평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java spring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게시판, 댓글, 대댓글 기능을 구현해 단순한 커뮤니티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만큼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행이던 챗봇을 구현해 보고 싶어 chatterbot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영문 챗봇을 구현해 봤고 구글에서 제공하는 dialogflow를 활용해 시나리오 기반의 한글 챗봇도 구현해 봤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팀 프로젝트 때 열심히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모르는 사람, 나갈 사람 등 많은 팀원들과 소통하며 그래도 끝내 잘 마무리 해가는 it 회사의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 같아 보람있는 시간들이었고 많은 경험들과 함께 무사히 League of legend 웹 을 잘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며

학원을 다니며 기획하고 ui도 설계하고 erd툴을 활용해 데이터베이스도 설계해 보고 팀원들과 프로젝트도 진행해 보는 등 꽤 많은 경험들을 하다보니 순식간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6개월 간 6시에 일어나 2시간을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저녁 6시까지 수업을 듣고 집에 2시간 걸려 돌아와 저녁 먹고 12시까지 공부하는 온 종일 개발만 하던 생활이었습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쉴 새 없이 개발에 몰두할 수 있어 좋았고 덕분에 취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폰에 번호가 다 날아가서 선생님, 학우들과 연락할 수 없지만 가끔씩 그 시절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이제 재밌는 시간은 지났고 다시 직장생활 생존기가 시작됩니다.

Foreign Company(외국계 회사)

· 13 min read
Alex Han
Software Engineer

2015년에 입사해 3년 동안 다닌 외국계 회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면접

여러 준비를 하며 it 분야로의 직종 변경을 생각하며 지내던 중 갑자기 업데이트 해 놓은 이력서를 보고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외국계 회사에 탄탄한 재무 상태면서 현재 집에서도 가까운 위치의 회사였습니다. 당시 선배들한테 들었던 다닐만한 회사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인당 10억을 넘기는 매출액을 가진 회사를 가야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었는데, 이것을 충족하는 회사였습니다.

직종 변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었지만 주변(가족, 친구 등)의 깊은 걱정과 취업 압박이 있었고, 외국계 회사라면 이전에 정했던 목표 중 하나로 경험해 보고 싶은 회사였기 때문에 지원해 보기로 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영어 자기소개를 준비하고 그 간 해 온 일들을 정리해 가며 부족한 부분들을 공부해 나갔고, 마지막으로 업데이트 된 이력서까지 숙지하여 준비를 마쳤습니다.

드디어 면접 당일 ☀️,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회사의 첫 인상은 조립식 판넬 같은 가 건물로 지어져 있었고, 넓은 주차 공간에 주차를 한 뒤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하자 덩치 있는 두 분이 나타나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날 데려갔습니다. 두 분은 입사 후 알게 되지만 소속되게 될 팀의 팀장과 선임대리였습니다.

공장 자동화에 대한 경험은 있는지? PLC 를 얼마나 다뤄 봤는지? 등등 실무경험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다행히 Simens 계열의 공장자동화 소프트웨어는 모두 내가 해 온 일이고 잘 아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신있게 실무를 할 수 있음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회사 경력이 너무 짧아 바로 업무를 잘 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짧은 회사 생활 때문에 뽑기를 망설이는 모습도 보여서 말하지 말 걸 그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직 이유를 낮은 연봉 때문이라는 이유를 분명히 밝혔고 군 시절 경험과 여러 역경을 이겨낸 일들을 제시하며 원래 잘 버티고 인내심 있는 사람임을 어필했습니다.

면접이 마무리될 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 물었고 괜히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당장이라도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금요일에 면접을 보고 월요일이 입사일이 됐습니다.

입사일

입사 후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면접 때의 존대하는 분위기와 달리 팀장과 선임들이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라고 말하며 바로 말을 편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팀장은 빠르게 업무 소개를 했고 다음주부터 현장에서 실무 투입 될 예정이니 잘 숙지하고 있으라며 책 두께의 프린트를 여러 개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멀리 선임들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너무 바로 보내는 거 아니냐? 그러다 나간다, 실무에 투입되고 나서 힘들게 일해 봐야 회사에 남아 있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일종의 테스트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습니다. 면접 때 말한 것처럼 당시의 나는 열정이 가득했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 능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고 포기하지 않겠다 생각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됐고 같은 팀원들끼리 식사를 같이 했는데, 식사를 같이 하러 간 팀원은 팀장과 면접 때 봤던 선임대리 둘 뿐이었습니다. 같은 회사의 다른 팀들도 물론 같은 시간대에 식사하기 때문에 식사하는 장면들을 봤었는데 선임이 먼저 자리에 앉으면 후임이 자리에 앉고 선임이 자리에 못 앉을 경우 후임이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아 먹는 등 군대생활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수평적인 관계일 거라 예상했던 외국계 회사였는데 수직적인 관계라는 것에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첫 일주일

당시 회사의 업무 방식은 프로젝트가 많지 않아서 그랬는지 선임대리급이 한 명 프로젝트 고문으로 가 있고 거기에 신입 또는 후임이 배정되서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해 마무리 짓는 방식이었습니다.

SK인천석유화학 공장에서 나오는 VOC(Volatile Organic Compounds)를 처리하는 RTO(Regenerative Thermal Oxidizer)장비를 설치하고 기대한 만큼 VOC를 잘 처리하며 좋은 효율로 운전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츨발하기 전 1주일 동안 다른 선임들과도 같이 식사를 하며 회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됐는데, 선임과 후임이 같이 배정되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그 곳에 내가 배정된 이유는 이전 후임이 퇴사했기 때문이라는 것과 그 선임분이 악명이 높다는 것, 꽤 여러차례 후임을 나가게 만든 분(이후 악덕선임이라고 지칭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대 생활 때도 이상한 사람 많았고 악덕한 사람 있었지만 잘 지냈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같은 일에 있어서 느끼는 바도 서로 다 다를 수 있고 사람간의 관계도 같은 사람이어도 사람마다 다른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생각하려 노력했고 열심히 일 할 마음으로 업무를 숙지해 나갔습니다.

금요일, 악덕선임이 등장했고 갑자기 업무용 트럭에 실어야 할 부품과 공구 리스트를 말하더니 실어 놓으라고 명령했고 월요일부터 인천으로 가야 하니 새벽 6시까지 회사로 출근하면 회사 차로 같이 이동한다고 말을 남기고 퇴근해 버렸습니다.

처음 듣는 부품, 공구들을 말로 대충 말하고 가서 찾는 일이 힘든 상태였고 다른 팀 선임들한테 질문해 가며 부품과 공구를 차에 실은 뒤 퇴근했습니다.

첫 실무

다음 날 새벽 6시 출근하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발하기 전 물품들을 한번 더 점검하고 기다리다 보니 30분이 지나 악덕선임이 왔고 어제 말한 걸 잘 챙겼냐고 못 챙겼기만 해보라며 화를 내고 인천으로 출발했습니다.

인천까지 가는 길은 아침이라 막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시간이 걸렸고 선임은 온풍기를 틀고 옆에서 잠들었는데 본인이 춥다며 창문을 못 열게 해 졸음을 겨우 참아가며 가까스로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SK인천석유화학의 출입 과정을 바로 실행하며 진행했고 짐 수레에 짐을 끌어가며 공장 내 사무실까지 옴겼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 짐을 정 위치에 둔 뒤 악덕선임은 잠을 못 잤다며 누구 오면 부르라더니 갑자기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30분 정도 지나자 아침 체조를 해야 한다며 나오라고 사람이 왔고 선임과 함께 나가 보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고, 선임과 나는 사람들과 함께 아침 운동을 했습니다. 군대 이후로 간만에 하는 단체 아침 운동이라 신기했습니다. 아침 운동이 끝나고 본격 공장에서의 업무가 시작됐습니다.

악덕선임은 우리 장비가 설치된 곳과 담당자분을 소개해 주고는 거의 다 했으니 시공을 잘 마무리 해 보라며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전기선을 끌어다 판넬연결하고 PLC 접점에 배선하는 배선공 아저씨들이 하는 일을 해야 했는데 PLC 프로그래밍만 하다가 처음 보는 설계 도면을 보며 배선공의 일을 배우고, 배선공 아저씨들에게 도면을 보며 배선을 똑바로 했는지 질문해 가며, 관리 감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 계장품들의 메뉴얼 문서와 설계 도면들을 보며 업무를 완전히 파악했고, 아저씨들에게 배선 방법을 가이드하고 일하는 아저씨들이 힘들다고 투정 부리면 완급조절을 하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매일 일일 업무 일지, 시공 계획, 설계 자료 등 많은 서류들을 작성해서 대기업 담당자에게 확인받는 절차를 거치고 회의실에 가서 시공 현황에 대해 회의도 하며 지내게 됐습니다.

어느 날은 악덕선임이 서류를 대충 제출해서 담당자의 심기를 건드려 담당자가 이 공장에서 나가라며 하이바 던져 가며 성질내며 실제 공사가 연기되는 날도 생겼고, 안전팀, 감사팀 등이 감시하다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 날의 프로젝트 일정연기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배선공, 기계공 등 외주 아저씨들을 인솔하며 업무 지시를 하는데 술을 많이 먹어 일을 못하는 등의 문제로 인력이 줄어들기도 하며 업무 지시를 잘못 이행하거나 가이드를 안 듣고 하고 싶은대로 이행하며 다시 일을 해야 하는 등의 일들이 반복됐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신입이었기 때문에 더욱 무시 당하고 잘 알지도 못하고 악덕선임은 화만 내고 잠만 자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이전 후임들이 왜 못 버티고 나갔는지를 체감했고, 결국은 선임에게 기대감을 1도 갖지 말고 오직 내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겠구나라고 마음 먹으니 차라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시공

장비가 공장에 설치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절차인력필요 했습니다. 하지만 적은 인력으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회사였어서 실무진 중 기계팀 1명, 전기팀 1명 만을 배치하고 일을 마무리 하게 했습니다. (물론 선임 1명과 같이 배치되지만 그 선임은 회의만 가끔 나가고 실무, 서류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아 회의 때 발언없이 내용만 듣고와 전달하는 업무 정도였습니다.)

우선 공장 관리 담당자들과 모여 장비에 대한 소개와 간단한 시공 계획을 말하고 실제 설치되어야 할 위치에 대해 논의하고 장비 설치를 위한 시공, 운반 계획을 해야 합니다. 또한 논의된 설치 위치와 공장 내 프로세스를 눈으로 파악하고 배관의 사이즈, 환경 상황들의 스펙들을 파악해 장비 설치를 위한 환경을 검토했습니다.

검토가 끝나면 실제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들어올 중장비들의 위치와 경로를 파악하고 시공의 모든 시뮬레이션들이 충족되는 위치를 정합니다. 장비를 설치하기로 정해진 위치에 대해 한번 더 공장 관리 담당자들과 논의하고 시공 기획, 설계 자료와 스펙을 이야기한 뒤 실제 업무가 시작됩니다.

업무가 본격 시작되면 매일 설계된 스펙 자료와 시공계획, 인력들이 왜 필요한지부터 뭘 했는지 까지 많은 서류들을 확인하고 그것에 대해 공장 관리 담당자들논의를 거치는 일을 계속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비, 눈을 대비해 실제 설치될 위치지대콘크리트로 높이고 중장비들과 설치 인력들을 소집해 시공을 진행합니다. 설치 인력들을 관리하며 설계대로 설치했는지 만들어온 장비가 스펙에 맞는지 검수하고 중장비 이용 계획, 세세한 설치 방식을 구상합니다.

이렇게 문제없이 장비의 겉이 잘 설치되고 나면 기계팀은 철수하고 기계팀의 보조를 하고 있던 전기제어기술팀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배관이 연결되어 있는 고철덩어리일 뿐인 장비에 팬, 버너, 판넬, 각 종 센서 등의 전기 계장품들을 설치하고 이를 판넬 내에 PLC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물론 각각의 계장품들의 성능 테스트 자료부터 스펙, 메뉴얼 자료 그리고 검수들까지 선 진행되어야 하고 배선공 아저씨들을 소집해 이를 완성해 가야 합니다.

전기 설치까지 모두 완료되고 나면 프로그래밍된 PLC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에 입혀주고 이제 본격적으로 현장 동작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갑니다. 각 동작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시운전을 위해 팬을 가동시키고 실제 공장 배기 가스가 아닌 바깥 공기를 활용해 RTO를 가동하고 버너가 현재 배합된 공기로 스파크를 튀겨 불이 정상 연소되는지 연료와 공기의 배합을 테스트 합니다.

불꽃의 색, 연료량, 팬 동작 등을 체크하며 최적의 상태를 만들고 나면 불을 실제로 높여 850도까지 온도를 높이고 모든 센서들과 프로세스들이 설계된 대로 흘러가는지 얼마나 효율적인지 체크해 다시 최적의 상태를 만들게 됩니다.

가장 힘들고 고된 초기 시운전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공장 프로세스를 거쳐서 온 처리해야 할 공기로 다시 시운전을 진행합니다. 공장의 공기는 많은 VOC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VOC를 연료 삼아 화력이 올라가 공기와 연료의 배합을 잘해야 하고 잘못하면 온도가 1000도를 넘어서 기계 장비 스펙에서 버틸 수 없는 온도까지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되는 순간들입니다.

그렇게 공장 내 VOC센서들과 실제 RTO 동작에 대한 동작 계수 값들을 조금씩 변경하며 최적의 상태를 만들고 나면 시운전이 종료됩니다.

며칠 밤을 새가며 시운전이 끝나면 거의 하루정도 지나서 실제 운전이 시작되는데 1주일 간은 대기하며 즉각 대응해주며 안정기를 갖습니다. 그 전에 고생하고 제대로 일을 마무리 했다면 이 1주일은 나름대로 잠깐씩 출근했다가 근처 모텔에서 쉬면서 대기하는 기간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고생한 걸 알아서 이 때 좀 더 놀다오라고 하거나 기간을 더 주고 쉬게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별, 직역별, 상황별로 프로젝트는 약간씩은 다르게 진행되기는 대부분의 시공 프로세스는 위와 같이 진행됐습니다.

전기 배선 설계

많은 프로젝트들을 거치면서 판넬 도면은 업무 지시를 하는 입장에서 완전히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숙지했고 나중에는 거의 외울 정도로 내용이 숙지됐습니다.

도면 내에 계장품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부터 판넬을 구성하는 패턴들, 전기 설계 방식들이 익숙해지자 당시 회사에서 한 명만 EPLAN 프로그램을 이용할 줄 알아서 도면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그 선임이 도면 설계를 해보라며 가르쳐줬습니다. 친절한 가르침과 그 동안의 프로젝트 경험 덕에 생각보다 이해가 쉬웠습니다.

설계도에 나오는 수 많은 계장품들의 spec 문서를 확인하고 설계한 뒤 실제 판넬 제작 시 설계도와 실제 배선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접점 테스트해 가며 판넬 검수를 통해 내 설계대로 됐음을 확인했습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직접 실무로 설계하다 보니 익숙해 졌고 할 수 있는 일이 됐습니다.

이후로 모든 프로젝트의 도면 설계는 그 선임분과 내가 나누어서 설계 단계에 일을 맡게 됐습니다.

PLC 엔지니어

외국계 회사에서 고연봉을 받는 즐거움도 있지만 PLC 엔지니어로서 좀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본사에서 프로그래머들이 전달해 준 내용과 거의 변경없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PLC 로직 상에서 뭔가를 변경하진 않고 HMI에서 환경 셋팅을 변경하거나 PLC 로직을 아주 조금 변경하거나 하는 미니멀한 커스터마이징이 전부였습니다. 심지어는 Siemens 소프트웨어 설치부터 PLC 내에 저장되는 데이터가 어디있는지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까지 회사 내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여기서도 이전 회사에서 배웠던 SimensStep7, WinCC 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설계된 내용과 설계 내용을 환경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SK인천석유화학은 Allen Bradley 사의 RSLOGIX5000, FactoryView를 사용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또한 오스트리아 본사에서 기본 셋을 주기 때문에 파악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설계된 내용을 보며 장비 프로세스에 대해 좀 더 깊숙히 알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공장 장비들을 구동하고 원하는 프로세스로 수정하며 그 동작들을 보는 경험은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판매하는 장비는 몇 개 없었고 연구 개발 부서도 따로 없었기에 더 늘어날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장 특성상 석.박사들이 만들어 놓은 화학 프로세스는 정해져 있고 이에 맞춰서 만들어진 프로그램 개발이 크게 달라지기는 힘들었습니다. 고객사마다 약간의 환경차이에 의해 수정되고 버전업되는 소프트웨어 적용 정도의 일을 맡아 하게 됐고 시운전을 위해서는 내가 모든 프로젝트에 고문처럼 등장하게 되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지만 항상 비슷한 일을 하기에 실력은 더 늘수 없어 고민에 빠졌습니다.

P&ID 설계

P&ID(공정관계장도)는 기계적 설치상태와 전기적 제어 장치의 공정 시의 상세한 프로세스를 살피기 위한 흐름도로서 이 흐름도에 환경장비의 화학적 프로세스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걸 그리는 것은 팀장급이었지만 사실 이 또한 오스트리아 본사측에서 제공한 자료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고 약간씩 커스터마이징하며 사용 했습니다.

물론 화학 공학 석.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화학적 프로세스를 만들어 새로운 장비 프로세스 기획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미 숙지한 장비의 P&ID는 공장 상황에 맞게 계장품과 배관 등의 설계를 어느정도 화학적 프로세스에 맞게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할 수는 있었지만 이 역시 본질적인 능력을 키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직 결심

많은 일들을 배우고 겪다 보니 어느새 4년차가 됐습니다. 연봉은 친구들에 비해 자신있게 말할 만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씀씀이 또한 커졌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전문성은 이 회사에서만 통할 수 있고 언젠가 이 회사가 무너지면 나도 무너질 것을.

회사가 불안정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재정이 꽤나 탄탄한 회사였고 정년도 보장해주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빠르게 성장하고 스스로 일하거나 집에 혼자 있어도 날 성장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회사에서 내 성장을 규제하는 분야가 아닌 내가 성장하려 하면 얼마든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분야. 일을 하면서도 그 모든 게 내 스펙이 되는 분야, 이 회사에 취업하기 전 내가 가고 싶었던 분야 였습니다.

그렇게 내가 가고 싶던 분야를 지금이라도 가고 싶어졌습니다. 더 늦으면 도전도 못해 볼 거란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고 이 회사에서 내가 살아남으려면 위 사람들처럼 정치하고 후임이 한 일을 자기가 한 일처럼 공을 뺏으며 충성 경쟁하며 능력은 점점 없어져 가는 나를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스스로 떳떳하게 내 능력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고 반복적인 회사 일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뭔가를 만들고 도전해볼 수 있는 분야로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만류

퇴사를 결심하고 직종 전환하겠다는 생각을 밝히자 주변의 모두가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이번 반대는 사실 설득력까지 있었습니다. 현재를 유지한다면 고연봉이 유지될 거고 탄탄했던 회사인 만큼 정년이 보장될 수도 있는데다가 집에서도 거리가 10분 거리에 회사가 잘 안되도 비슷한 분야로 취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능력이 급격히 늘거나 성장할 수 없고 회사에 속하지 않으면 혼자 사업을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현재를 유지하지 않고 내가 선택한 분야로 도전한다면 이미 30살이 된 늦은 시작에 대한 중압감과 평생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 속에서 일해야 하며 연봉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성장하고자 한다면 회사와 상관없이 언제나 성장할 수 있고 이 분야 보다는 수평적인 분위기에 사업이나 디지털노마드가 될 수도 있는 분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전향하기로 했습니다.

어른들과 주변 친구들 모두 강력히 반대했고 현실적으로 얼마나 손해인지를 지속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을 꾸고 있었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동경, 수평적 분위기, 그리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했고 결국 직종 전환을 선택 했습니다.

퇴사 계획

퇴사 후 직종 전환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며 미리 python을 공부했고 IT회사들의 지원자격을 살피고 인사담당자분들께 메일을 보내 궁금한 사항들도 질문했습니다. 신입으로 지원해 본 많은 회사들도 있었지만 IT 관련 경험이 한 줄도 없는 나의 손을 잡아준 회사는 없었습니다.

지금 분야에서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듯 내가 이력서에 쓸 수 있고 면접에서 자신있게 말할 능력이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국비지원교육을 찾아보게 됐고 메이저 교육 기관들에 지원했지만 교육 기관에서조차 IT 무경험자들을 탈락시켰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부족해 보이는 교육 기관에 지원해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합격한 교육 기관의 일정에 맞춰 회사일을 인수인계하며 원하는 시기에 정든 회사와 이별할 수 있었습니다.

First Job(첫 직장)

· 6 min read
Alex Han
Software Engineer

2014년 9월 첫 회사에 입사해 그 해 12월까지 겪었던 아직은 대학생이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면접

이력서 작성도 면접도 모두 처음이던 그 시절, 한번 작성해 본 이력서가 쉽게 통과 됐고 생각보다 빨리 면접을 보게 됐습니다.

대학 시절 그나마 가장 흥미를 느꼈던 자동 제어 분야로 취업하고자 했는데, 자동 제어 분야 중 하나인 공장 자동화 분야로 취업을 하게 되어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면접 날 질문은 자기소개 1분, 관련 경험, 지원동기 3가지였는데, 첫번째 자기소개에서는 성장 과정과 대학 시절 흥미를 느꼈던 자동 제어 수업에서의 프로젝트 경험을 이야기했고 대학 시절 영어 멘토 경험을 이야기 하며 실무에서 영어가 문제가 되지 않음을 어필했습니다.

관련 경험으로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공장에서 가끔 일을 도운 적이 있어 공장이 친숙하다는 것과 면접 전 실무 수행 능력을 기르기 위해 PLC 툴을 미리 독학한 일을 말했습니다.

지원동기로는 대학시절 자동제어 수업 때 설계한 대로 하드웨어가 움직이는 것에 흥미를 느꼈었고 공장 자동화 분야에 꼭 취업해 보람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입사일

인생 첫 입사일, 밤잠을 설쳤지만 아주 일찍 일어났고 9시 출근이지만 8시에 회사에 도착해서 열정있는 신입인 것처럼 행동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9시가 다 되서야 멀리서 천천히 걸어와 문을 열어 주었고 배정되어 있는 책상에 눈치껏 앉았습니다.

직원들은 대부분 9시가 넘어 출근했고 나처럼 굳어 보이는데 한껏 꾸미고 출근한 잘생긴 사람이 있었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동기였습니다. 둘 다 첫 회사, 첫 출근이었습니다. 동기는 한살 어린 동생이었고 말이 잘 통해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선임들은 친절히 OT를 진행했고 간단한 회사 소개와 앞으로 진행될 교육에 대해 설명해 줬습니다.

교육

PLC의 정의,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회사에서 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 설명해 줬고 이후 실무에서 사용 중인 Simens사의 Step7, WinCC 툴을 셋팅하고 실제 교육용 하드웨어를 통해 제어해 보며 실무를 익혔습니다.

교육은 빠르게 끝났고, 이후 1주일 간 교육 내용을 반복 숙지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교육을 해주던 선임은 교육 내용을 열심히 숙지하는 것을 보고는 다음 교육부터 신입 교육을 나에게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교육 내용을 완전히 숙지했었기 때문에 실무 경험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직접 신입 교육을 하다 보니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좋은 시너지가 있었습니다.

실무시작

첫 교육이 끝날 무렵, 회사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신입을 각각 배정했고 동기는 SK하이닉스로, 나는 현대제철배정됐습니다.

9 to 6 근무였는데 현대제철 출장이 매일 이어졌고 출장갈 때마다 아침 7시에 출발해 운전하고 공장애 도착해 업무를 하고 나면 저녁 6시가 됐고 집에 운전해서 돌아오면 저녁 8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는 극악의 운전 지옥에 빠졌습니다. 심지어 동기는 그 시기에 출장간 곳의 선임들과 합숙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현장에 갈 때마다 공장 사무실 바닥을 뜯고 통신 케이블을 직접 찍어 설치하거나, PLC 설치된 데스크탑과 모니터, 렉을 들고와 설치하는 등 PLC 외적인 업무가 주 업무가 되어 갔고 처음 교육을 듣고 열심히 실습하던 PLC 소프트웨어 개발과는 멀어졌습니다.

한번씩 사무실에 오면 새로 들어온 신입들에 대한 교육을 했고 이 시간이 PLC 업무를 실질적으로 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지속되는 현대제철로의 출장야근, 특히나 겨울철에는 운전해서 갈 때 빙판에서 사고도 겪으면서 이게 맞는 건가 싶은 회의감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이직결심

1달 2달 시간이 지나갔고 일이 익숙해져 가면서 현대제철 쪽 업무를 거의 마무리 하면서 동기가 있는 SK하이닉스 팀 쪽에 지원을 가게 됐습니다. 업무 시작 전 일찍 도착해 동기가 지낸다는 합숙소에 들르게 됐는데 동기의 생활은 제가 생활하던 것보다 더 말이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오래된 아파트 중 1개의 방을 빌렸고 거기서 4명의 남자들이 합숙하는데 문을 열자마자 나오는 응축된 담배 찌든 향이 코를 찔렀습니다. 재빨리 선임들이 깨지 않게 필요 물품만 챙겨 나와서 업무를 위해 하이닉스로 출발했습니다.

하이닉스에 도착하니 밤샘 작업을 한 듯한 직원 2명이 있었는데 한번도 보지 못한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그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두 분은은 SI 업체에서 일을 굉장히 잘해서 이사님이 직접 스카웃한 분들이라고 했습니다. 두 분은 C언어 개발자였는데 PLC 관련 데이터를 다루는 업무를 맡고 있었고, 스카웃 조건 상 출퇴근이 자유롭고 워낙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연봉 테이블이 다른 직원들과 달랐습니다.

업무가 끝나고 숙소에 있던 선임들은 지원이 고맙다며 저녁을 먹자고 했고 저녁이 회식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선임들은 회사 연봉 체계에 대해 불만이 굉장히 많았는데 당시 5년차도 3000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0년 다 되가는 분들도 4000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앞서 만났던 두 분은 입사한지 얼마 안 됐는데도 연봉이 5000을 넘는다고 들었는데, 내 직종으로는 받을 수 없는 연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26살, 대학 졸업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적은 연봉에는 불만을 갖지 않았지만 면접 당시 실력에 비례해 급격히 오를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5년 뒤, 10년 뒤 받게 될 연봉이 눈 앞에 보여 암담했습니다.

이대로 31살, 36살이 되면 열심히 출장다니며 선임들 비위 맞춰가며 맘에 들지 않는 연봉을 받으면서 온갖 잡일까지 해가며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이닉스에서 스카웃 된 선임들처럼 멋지게 회사를 다니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컴퓨터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고 직종 변경을 결심하게 됩니다.

만류

직종 전환이나 이직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회사 사람들 모두 만류하기 시작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1. 첫 직장은 정말 중요한 거니 쉽게 생각하지 마라.
  2. 다른 직장도 똑같다.
  3. 1년도 못 체우면 다른 회사에 취업이 어렵다.
  4. 철이 없다.
  5. 자기 인생에 무책임하다

1, 4번은 잘 이해 되지 않았고 5번에 대해서는 내 인생인데 나보다 더 치열하게 내 인생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2번에 대해서는 다른 좋은 직장들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3번은 불안했지만 혹시 짧은 이력이 문제라면 그 이력을 쓰지 말고 신입으로 지원하면 된다 생각했습니다.

퇴사 의지를 확실히 하자 대화를 나눈 적 없던 선임들까지 갑자기 찾아와 말을 걸어 왔고 인생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퇴사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회사 비전을 이야기하며 남게 하려는 사람들, 왜 나가는지 이유를 남들에게 전하고 싶어 온 사람들도 있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전반적으로는 여기서 나가는 것을 모두 나가고 싶지만 못 나가고 있는데 나가서 부러워 보이는 모습이었고 짧았던 회사 생활만큼 퇴사도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퇴사 이후

나름대로 첫 회사였기에 어린 나이에 심적으로 부담감이 컸습니다. 다음 취업은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직장은 어떤 직장인지 자문해 봤습니다.

  1.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직무 만족)
  2. 대기업 또는 외국계 회사(고연봉)
  3. 공기업(워라벨)

3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는 회사에 가고 싶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를 고민해 봤고 고민 끝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정리가 됐습니다.

  1.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1. 컴퓨터 언어 중 하나라도 익숙해지기 위한 공부
    2. 언어를 사용해 할 수 있는 개발 분야에 대한 조사
  2. 대기업 또는 외국계 회사
    1. OPIC IM2(토익 700 기준 대체용)
    2. 대기업 시험 준비
    3. 면접 스터디
  3. 공기업
    1. 전기기사 공부(3기사가 필요하기에 1기사부터 준비)

그렇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의 직종전환을 위해 python 공부를 시작했고 OPIC 학원을 2주 다니며 IM2를 취득해 전기기사 필기 시험을 통과해 실기 시험을 준비하는 등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Intro

· 14 min read
Alex Han
Software Engineer

👋 안녕하세요. Alex의 블로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저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9년차 개발자입니다.

♥️ 유용한 오픈 소스들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고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서비스를 만들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 현업에서 DB설계, 백엔드/프론트엔드 개발, 클라우드 구성까지 일하며 보다 많은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중입니다.

👀 블로그를 통해 그 동안의 경험들을 남겨 추억들을 회상하고 앞으로의 삶의 재료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 업무, 일상, 인간관계, 공부, 관심사 등 여러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 첫 글인 만큼 길게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을 간단하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직장 생존기

시작

대학교 시절 자동제어 수업에서 뭔가를 제어하는 것에 흥미가 생겼고 이 때의 기억으로 첫 직장을 자동제어 분야인 PLC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첫 회사

첫 회사는 PLC 엔지니어링만 하는 회사였고 여기서 Simens PLC를 처음 접합니다. 관심있던 분야여서 처음 접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적응이 빨랐고 입사 후 1달 만에 신입들을 교육하게 됩니다.

공장자동화에 대해 실무를 배우던 중 C 언어를 통해 PLC 내 데이터를 다루는 개발자분들을 알게 되고 이 때 처음 개발자가 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PLC 설계와 공장에 실제 적용, 네트워크 통신 등 많은 것들을 실무를 통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현재 너무 낮은 연봉5년 뒤 받게 될 낮은 연봉(선임들의 연봉으로 추정) 때문에 당시 26살 이었던 나는 31살의 나를 위해 회사를 퇴사합니다.

취준

첫 회사를 퇴사하고 3개월은 집에서 하니 놀았고 이후 컴퓨터 공부를 조금씩 시작했습니다. 전공에서 배웠던 visual c, java를 다시 공부할까 했지만 대학 시절 컴퓨터 관련은 공부를 안했어서 새로 하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검색해 보고 가장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python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미래가 불안해 전기기사Opic도 병행했습니다. (불안감에 정신없던 시기😭)

python의 언어 사용법을 익히고 간단한 예제들을 구현해 볼 쯤 헤드헌터로부터 외국계 회사 취업 제의가 왔고 높은 연봉에 탄탄한 재무구조를 가진 회사였지만 컴퓨터 분야를 준비하던 중이라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공부를 더 뭘 할 수 있는지 막막함을 느끼기도 했고 이전 회사가 연봉이 너무 낮았는데 좋은 회사 제안이 와서 컴퓨터 공부하면서 병행해 보자 생각에 면접을 보기로 했습니다.

외국계 회사

입사하게 된 회사는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둔 환경장비 회사였습니다. 당시 외국계 회사라고 하면 높은 급여, 수평적 분위기 생각했었기에 기대를 품고 입사했습니다.

회사에 꼭 입사하기 위해 영어 면접을 준비했고 PLC 엔지니어링 경험들을 통해 정리하고 면접장에 갔는데 면접자들이 영어를 잘 몰랐고 PLC 엔지니어 경험 또한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되돌아보면 영어 면접, PLC 경험들 보다는 뚝심있게 버티고 열일하겠다는 자세 때문에 뽑혔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 공부와 그 분야로의 취업을 해보고 싶은 갈증이 있었지만 혼자 공부하던 막막함돈 벌기 좋은 환경의 회사에 눈이 멀어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입사했습니다.

실제로 다녀보니 연봉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고 중간 중간 보너스에 연말에 빅 보너스까지 이전에 비해 연봉이 2~3 배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고연봉에 숨어있는 회사 문화는 ...😱😱😱

회사 인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과장급 이상부터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물론 가끔씩 하는 시늉을 하긴 했지만) 업무 시간에 폰 게임, 웹툰보기, 탁구(사무실 한중간에 있었음), 골프치러 가기, 하청업체 미팅(공짜 술 먹으러 가는 자리) 등 아주 높은 연봉에 걸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위치한 선임대리급들은 프로젝트에 사원들과 같이 투입되지만 실무를 하지 않고 관리만 하고 사원급들의 공을 가로채고 윗사람들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마음으로 정치만 했습니다. (나중에 입사한 전문성있는 경력직 분과 몇몇 양심있던 선임분들은 그래도 열심히 함)

나머지 사원급들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해야하는 온갖 잡무와 유지보수 영업, 구매/재고 관리, 업체 관리, 설계, 시공, 유지보수, 서류작업까지 모두 진행해야 하는 1인 사업자의 업무 강도가 주어졌습니다.

실무를 해결해가며 프로세스 설계, PLC 설계, 판넬 설계, 유지보수, 시공관리, 프로젝트매니저 등 다양한 포지션이 익숙해지고 혼자서도 프로젝트가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공장 근처에서 출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너무 여러 포지션의 일을 하다 보니 회의감이 많이 들었지만 연말마다 들어오는 보너스의 위력에 매번 굴복하다 보니 2년이 지났습니다. 일당백의 고된 업무가 익숙해지던 시기 회사에서 더 배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내가 진짜로 하고자 하던 것이 뭐였는지 고민했습니다.

대학 시절 접했던 자동제어 수업에서 설계한대로 기계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굉장히 뿌듯했었는데 공장에서의 실무 자동제어는 변화가 거의 없고 공장의 척박한 환경 때문에 제어대로 되기 보다 센서가 고장나거나 오동작해서 조금씩 튜닝해 맞춰야 하는 땜빵식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안전모, 안전화, 안전복을 입고 대기업 공장 관리자들에게 굽신되가며 일하고 있는 환경도 그렇고 이게 내가 하고자 하던 일이 맞나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건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했던 python다시 공부하기 시작했고 다시 이전 만큼의 기초 상태에 도달했을 때 회사를 다니며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이 들어 퇴사를 하게 됩니다.

정부지원 코딩교육과정

첫 회사에서 5년 뒤의 나를 상상하던 그 때가 바로 얼마 전 같은데 벌써 그 5년 뒤가 코앞까지 다가와 30살이 됐습니다. 직종전환을 준비중인 백수로서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했습니다.

삼성 SDS와 같은 취업연계 메이저 교육 과정에 지원했지만 면접 탈락, 취업하여 배우려 했지만 서류 탈락만 계속됐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좀 적어보이는 학원에 국비지원 교육과정을 찾아 지원했고 그렇게 공식적 공부 기간을 부여받습니다.

수업은 언어의 기본 기능을 교육했고 java, spring을 이용한 웹 개발 교육(게시판 만들기)을 가르쳤고 교육과정 상에 있던 머신러닝 교육은 R 을 통해 데이터를 차트로 표현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머신러닝이 핫한 분야라는 것을 당시에도 알았어서 그 분야로 취업하고 싶어 열심히 독학했습니다.

학원에 나오는 학생들은 3가지 분류가 있었습니다.

  1. 국비를 받으며 놀고 싶은 학생
  2. 학원을 통해 연애를 하고 싶은 학생
  3. 직종 전환이 절실한 학생

늦은 나이직종전환에 도전중이어서 절박했기에 저는 3번에 해당했고 다른 학생들과 공부 이야기는 하지만 피씨방, 노래방을 같이 가진 않았고 팀 과제를 하지 않고 공부도 안하며 묻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혼자 과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멘탈을 부여잡으며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교육과정 참여 이전에 이력서를 많이 넣어봤어서 내가 뭘 할 줄 안다라는 증거자료가 필요했어서 팀 프로젝트를 정말 열심히 수행했고, 학원에서 처음으로 머신러닝을 활용한 웹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tensorflow를 활용해 리그오브레전드 승패예측 모델, chatterbot 을 활용한 챗봇) 6개월 간 java웹을 구성하는 것을 배웠고 수차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머신러닝을 서비스에 적용해보고 나름대로 뿌듯한 경험들로 체워 교육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다시 취준

선생님은 취업이 잘될 거라고 했고 자신감도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취업이 잘 안됐고 이전 직종의 마지막 회사에서 3년 안에는 언제든 돌아오라고 지속적으로 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취업이 잘 되지 않자 주변 사람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간 사람인에 있던 수 많은 IT 기업에서 서류 탈락했고 30살의 마지막 12월까지 취업이 되지 않으면 원래 직종으로 돌아가 꿈 없이 살리라 생각하던 중 전화가 왔습니다.

다시 첫 회사

면접은 개발자 2분과 진행됐고 개발 관련 질문 위주로 진행됐습니다. 이전 회사들의 군대식 문화와는 달리 합리적이고 수평적으로 보이는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대에 부풀어 30살의 마지막 달 IT 첫 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회사에서는 앱과 웹 서비스를 하며 정부 과제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신입으로 입사했던 저에게는 프론트엔드 직무에 배치되어 웹 개발을 맡게 됩니다. 개발 인원은 3명, 그 중 2명은 창립맴버였고 그래도 꽤 오래된 회사에 2명을 제외하고 계속된 인원교체가 있었는데 왜 그런건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업무적으로 선임이 배정됐습니다. 교육을 해주기로 한 선임은 실무 교육은 전혀 하지 않고 javascript 이론 교육만 꼬투리 잡아가며 인터넷 조사를 시켰습니다.

실 코드에 대한 브리핑도 없고 소스도 어디있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식사 시간에는 본인의 정치성향, 가치관강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막내라서 본인이 받았다며 CS 전화 업무를 넘겼고 3번 울리기 전에 CS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첫 실무 교육을 했습니다.

nodejs를 처음 접하는 저에게 아무런 설계, api 문서도 공유하지 않고 프론트엔드 일을 시켰고 느리게 하면 폭언을 하는 선임의 태도에 황당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해 react가 익숙해지게 됐습니다. 덕분에 기존의 Marionettejs로 구성된 것을 reactjs마이그레이션하는 업무를 잘 수행했습니다.

일이 익숙해지고 많은 일들을 처내갈 쯤 신규 서비스의 프론트엔드 개발을 맡게 되고 백엔드 개발을 담당한 그 선임 개발자가 api 를 만들지 않더니 알아서 백엔드를 개발해 보라고 했습니다. 입사하고 한번도 공유받지 못한 백엔드 소스지만 물어 물어 소스를 찾았고 이를 이용해 개발을 시도했고 얼추 개발이 완료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그 선임 개발자분은 본인이 개발을 다 했고 개발을 엉망으로 했다며 아무런 조언도 없이 제가 짜 놓은 소스 브랜치를 삭제 했습니다.(리모트, 로컬 모두) 선임이 만든 api는 프론트엔드를 개발하는 저와 아무런 상의없이 만들었기 때문에 먼저 개발을 마무리했던 프론트엔드의 소스를 모두 고쳐야 했습니다.

그 선임 개발자 분(40대 초반 남성)은 젋은 여사원분(20대 중반 여성)에게는 묻지도 않아도 근처에 기웃대며 문제를 해결해주며 환심을 사고 있었습니다. 억울하게도 신입 개발자에게 맡긴다던 CS 전화 업무도 여사원분에게 맡기지 않아 퇴사 때까지 제가 CS 담당자로 지내게 됐습니다.

지독한 정치 성향 강요복싱 허세를 부리며 쉐도우 복싱까지 눈 앞에서 하는 모습들이 회사 생활을 점점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업무 협업 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에 진저리가 났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종교를 강요하던 사장님에게 상황을 말씀드렸지만 신입이라 잘 몰라서 그런거다,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도 많다며 또 교회 권유를 하고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IT 첫 회사였기에 시키면 시키는대로 신규 앱 시장조사부터 디자인, 정부과제를 위한 기차에 녹음기 및 스피커 설치 등 온갖 잡다한 업무들을 해가며 열심히 임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정부과제에 참여하면 시켜주기로 했던 데이터 분석 업무도 대졸 신입 여사원에게 넘어갔고 그 선임 개발자는 담배를 피며 젋은 여사원을 뽑아야 일할 맛이 날 거 같다며 이상한 소리까지 하는 것을 보고 퇴사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극 초기 스타트업

데이터 분석업무를 끝끝내 맡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그 분야로 개발할 수 있는 곳을 중점으로 취업준비를 했습니다. 찾아보니 데이터 분석업무를 하기 위해서 높은 학력이나 유관 경력이 필요해서 쉽지는 않았지만 예상외로 이력서를 올려둔지 얼마 되지 않아 연락이 왔습니다.

헬스케어 분야의 회사였고 극 초기스타트업으로 이직하게 됐습니다. 3명의 직원 모두 창립맴버로서 입사일도 같았습니다. 사장님은 브랜딩 일을 하시던 분이시고 사장님의 남편은 의료 빅데이터 분야 교수님, 같이 입사한 개발자 분은 데이터 분석 전문가, 사장님 남편 분의 학생인 대학원생 그리고 저까지 5명의 팀원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투자를 유치에 바쁘고 개발을 잘 모르는 사장님과 사장님의 남편은 개발기간 산정을 이상하게 했습니다. 아무런 기획, 디자인도 없이 예시 싸이트를 보여주고는 UI는 조금 별로라도 앱과 웹 서비스의 기능이 구동되는 프로토타입1.5주만에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사장님과 남편분 제외 실무진 3명이서 업무를 분담해야 했는데 그나마 서비스 개발을 해봤던 제가 상황을 주도해야 했습니다. 웹 개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웹프론트엔드백엔드를 혼자 개발하기로 했고 어차피 앱은 저도 새로 공부해야 하는 거니 2명이서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를 활용해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9 to 9 으로 일하며 1주이 지났고 앱과 웹의 api 서버를 개발을 완료했고 프론트엔드 웹도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외부에 앱, 웹 시연이 있을테니 서버에 백엔드 api와 웹을 띄워야 했기에 GCP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됐고 회의 시간이 찾아왔는데, 서비스 개발 경험이 전무했던 2분은 1주 뒤의 중간 보고에서 앱 내 버튼 몇 개만 나열된 결과물을 보여주며 시간 부족을 말했고 사장님의 극대노를 온몸으로 맞게 됐습니다. 대학원생분은 그 때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며칠 뒤 대학원으로 돌아갔습니다. 대학원생분이 돌아가고 다시 앱 개발에 전념해 react native 를 공부해 개발에 성공했고 시연을 성공해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투자 유치 성공 후 디자이너, 의료 데이터 전문가, 카피라이터 등 인원이 대거 채용됐고 본격 개발 및 기획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의 반복되는 극대노로 다시 모든 사람이 나갔고 다시 처음 그 개발자분과 함께 2명만 남게됩니다.

그런 뒤 교수님이 찾아와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해 건강검진 pdf 파일을 자동 파싱해 db화하는 솔루션 개발을 요청하셨고 또 2주 제한을 주며 해내라고 하셨습니다. 애초에 pdf 파싱을 자동화하는 것은 불안정하고 심지어 건강검진 pdf 파일마다 규칙도 너무 달라 반자동으로 입력하게 하고 수동으로 조정하는 것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진행하게 됐습니다.

2주 동안 다시 만 개 가량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가져와 규칙을 찾았고 만 개까지는 정상적으로 db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케이스를 알지 못하고 다른 케이스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잘 돌아가는 솔루션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방법1과 방법2로 반자동 입력 방식도 개발해 두었습니다.

이번에도 시일을 맞추기 위해 9 to 9 으로 일했고 잦은 야근과 무리한 일정, 조율되지 않는 업무, 긴 출퇴근시간 등이 겹쳐 번아웃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력이 없어 내가 나가면 개발 가능 인원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섣불리 퇴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장님이 하고 싶은 수 많은 개발계획들을 멘토분이 다니는 회사와 IPO를 통해 개발 인력 지원을 받아 외주 인원으로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등 모두 지원받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때부터 늦은 밤에 조금씩 이력서를 업데이트했고 개발 인력 지원을 받기로 한 시점에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와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됐습니다.

Series A 스타트업

개발을 혼자 하던 경험 때문에 이번 회사는 개발자가 많아 일을 분담할 수 있는 회사였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면접 당시 부사장님한테 개발인원을 질문했고 11명 정도 있다고 답변받아 안심하며 입사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입사 당일 개발자는 저 포함 4명이었고 나머지 7명은 마켓팅, 경영진을 포함한 인원임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4명이 어디냐란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만 3주 뒤, CTO 분과 경영진, 개발자들 간 불화가 있었고 2명이 퇴사하고 CTO 분이 내쳐지며 다시 혼자 남았습니다.

불화로 인해 퇴사자들은 인수인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갔고, 혼자 남은 저는 회사의 서비스 이해부터 각종 계정 정보, 클라우드 구성, 소스 구성, 개발 관련 모든 파편화된 정보들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클라우드 구성도, CI/CD, ERD, 백엔드, 프론트엔드, 앱 내 로직들 모두 회사 문서로 정리하다 보니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코드들을 숙지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한달 정도 이후에는 올라운더로서 유지보수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달이 지나고 android, ios, react native 이슈들에 의해 바쁘던 중 경영진과 마켓팅 부서에서 스타트업의 빠른 변화를 위해 앱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요청했습니다. 경영진, 마켓팅 인원 모두 슬랙을 통해 유지보수 관련 질문과 각종 개발 이슈들을 DM, 대면으로 각각 와서 질문하고 답변해주고 그 외 시간에 힘들게 유지보수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대표님의 강력한 추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청구 기능, 광고 추적 기능, 딥링크 컨트롤 기능, 에디터 기능, 검색 기능 등 그 동안 개발자들과 불화로 인해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기능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영진들은 빠른 개발 완료를 원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혼자서 모두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유료 api를 연동해 개발을 준비했습니다. 기능 구현을 위한 방법, 데이터베이스 설계, UI 설계, API 설계, 클라우드 설계 등등 많은 경험들을 하다보니 3개월이 지나갔습니다.

그 후로 6개월 뒤 10년 차 개발자분이 들어왔고 그 분이 갑자기 CTO 직책을 맡게 됐습니다. CTO 님께 그 동안의 정리된 문서들을 공유하고 소스 로직들에 대해 교육을 마무리했을 쯤, 마이데이터에 지원하기 위해 코스콤 클라우드로 클라우드 이전을 해야 한다고 요청이 오게 됩니다.

CTO 입사 후 모든 계정권한들을 나에게서 제한했고 오직 소스 권한만 남겨뒀는데 클라우드 이전을 할 때 이전 레거시 소스를 모두 제거하고 신규로 마이그레이션 해야 된다며 경영진에게 말했고 경영진들도 이를 허가했습니다.

laravl 백엔드와 express 엔진을 모두 새로 설계해서 api 를 모두 옮기는 작업을 맡게 됐고 CTO님은 클라우드 구성을 마무리 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2개월 동안 CTO님은 클라우드 구성을 끝내지 못했고 마이그레이션 작업을 혼자 해야 했습니다.

마이그레이션이 마무리 되고 CTO님은 3년~5년차 정도의 경력자 지인들을 회사에 추천해 입사시켰고 어느새 개발팀은 7명이 됐습니다. 인원이 체워지고 업무가 분업화 되면서 보험 엔진 서비스의 코어 기술인 엔진 파트를 혼자 맡게 됐고 3명은 프론트엔드(CTO님 포함), 3명은 백엔드를 담당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 CTO님은 레거시 코드에 문제가 많아 프론트엔드, 앱도 마이그레이션 했으면 한다고 했고 백엔드, 엔진도 한번 더 종합해서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납득하기 힘든 마이그레이션이 또 진행됐는데 이전보다 인원은 많아졌지만 보안상 업무를 진행하는 범위는 서로 한정되어 있었고 CTO님만 전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3개월을 말했던 마이그레이션 기간은 신규 엔진 개발만 1달 반 안에 완료하고 나머지는 1년 가까이 지연되게 됐습니다. CTO님과 그가 뽑은 지인들은 경력이 있긴 했지만 단합해서 일을 진행하지 않았고 일이 지연되는 걸 책임을 기획자들에게 돌렸던 걸로 들었다.(당시 신규 엔진 개발과 외부 프로젝트들을 위해 보험 설계사 사무실인 아래 층에서 근무함)

그렇게 경영진과 모든 부서와 사이가 안 좋아진 CTO와 CTO의 지인들은 앱에 모달창도 안 만들어주며 일을 안하기 시작했고 슬슬 퇴사를 준비하며 회사를 놀러 다녔습니다. 모두 퇴사 후 알게 된 사실은 CTO와 지인들경력위조를 했다는 것, CTO는 입사 당시 3년차 프론트엔드 개발자였고 이 회사에서 처음 실무로 백엔드와 클라우드 구성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이 퇴사하는 동안 게임업계에 있던 다른 CTO님이 들어왔다가 CTO의 지인들에 의해 금방 다시 나가고 사내 정치로 업무는 스톱되고 유지보수도 안되서 엔진 부서였던 제가 다시 유지보수 업무를 떠안게 됐습니다. 그리고 보험사와의 BtoB 솔루션 납품, SaaS 서비스 등을 혼자 개발하고 런칭하며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렇게 2021년이 거의 지나갈 무렵 이번엔 위조경력이 아닌 찐 경력 10년 차 이상인 분들로 인원이 구성됐고 다시 개발팀이 저 포함 4명이 됐습니다. 현재는 업그레이드 보험 엔진 개발데이터 분석데이터 기획, SaaS 서비스 관리를 맡고 있고 중간 중간 팀원들과 협력해 유지보수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며

장문으로 적은 내용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러 회사를 다니면 사내 문서로 많은 글들을 적어 왔지만 실제 내 소유가 될 수 있는 글은 적어보지 못한 것 같아 이제부터라도 내 소유의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

앞으로 회사 각각의 간단한 이야기를 작성하고 그 이후에 구체적인 사건들, 해결해 온 일들 등등 많은 것들을 적으려고 합니다.

포스트 보다 더 상세함을 요하는 내용은 Docs 에 더욱 상세하게 작성하겠습니다. 사회초년생분들, 직장생활에 지치신 분들, 혹시나 저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에게 도움되기를 기원합니다.⭐️